Mrbaeksang
접속·오늘

· 매일 08:00 KST

← 노트
· AI· 프롬프트· 글쓰기

AI한테 '30년차 마케터처럼' 시키는 게 안 통하는 이유

AI를 처음 써보면 다들 비슷한 단계를 밟는다. 신기하다 → 어느 순간 내 맘대로 안 된다 → "역시 별로네" 하고 창을 닫는다. 그 중간에 거의 모두가 한 번쯤 써먹는 비법이 있다. 역할 부여다.

너는 30년차 마케터야. 우리 신제품 홍보글 좀 잘 써줘.

직업과 짬밥을 붙이면 AI가 갑자기 고수로 변신할 것 같다. 답도 조금 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거 거의 안 통한다. 왜 그런지 하나씩 풀어보자.

'30년차 마케터'가 대체 누구인가

우리 회사 김 부장도 30년차고, 옆 회사 박 이사도 30년차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일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한 명은 데이터만 보고, 한 명은 감으로 밀어붙인다.

그러면 "30년차 마케터처럼"은 둘 중 누구처럼 하라는 걸까? AI도 모른다. 정해준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서 AI는 진짜 전문가가 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떠도는 '30년차 마케터 느낌'을 흉내 낸다. 말투만 잡고 그럴싸한 단어를 뿌릴 뿐, 알맹이는 그대로다.

'잘한다'는 건 정의된 적이 없다

함정이 하나 더 있다. "일 잘하는 사람처럼" 해달라고 했는데 — '잘한다'가 정확히 뭔가? 빠른 것? 꼼꼼한 것? 창의적인 것? 안전한 것?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그걸 정해주지 않으면 AI는 자기 멋대로 '잘하는 척'을 하나 골라서 한다. 그래서 어제는 마음에 들고 오늘은 엉뚱한 결과가 나온다. 빈칸을 매번 다르게 채우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내 생각이 아니다

최근 연구들이 실제로 이걸 확인했다. 와튼스쿨 연구팀은 수천 개의 사실 기반 문제로 실험했다.

전문가 페르소나를 붙여도 정답률은 오르지 않았고, 도메인이 어긋난 페르소나는 오히려 정확도를 떨어뜨렸다.

역할 부여는 말투와 톤을 잡는 데는 쓸모가 있다. 하지만 정확도를 끌어올리는 비법은 아니다. 그래서 요즘 AI 회사들의 가이드도 '무슨 역할인 척'보다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원하는지'를 훨씬 강조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그럼 어떻게 시켜야 하나

역할 이름을 붙이는 대신, 원하는 결과를 구체적으로 그려준다. 같은 신제품 홍보글이라도 이렇게 바꾸면 결과가 흔들리지 않는다.

  • 타깃: 20대 여성
  • 채널: 인스타그램 피드
  • 톤: 친근한 반말
  • 길이: 3줄 이내, 이모지 1개
  • 제약: 가격 언급 없이, 첫 문장은 스크롤을 멈추게

코드로 비유하면 이런 차이다. 너는 30년차 마케터야 는 변수 이름만 거창하게 지은 것이고, 위의 구체적인 명세는 실제로 동작하는 함수 시그니처다. 모호하면 AI는 흉내를 내고, 구체적이면 AI는 일을 한다.

정리

AI를 정말 잘 쓰는 사람은 프롬프트 고수가 아니라, 자기가 뭘 원하는지 똑바로 아는 사람이었다. "30년차 마케터처럼"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건 정확히 이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오늘부터 직업 이름을 붙이는 습관을 한 번 멈춰보자. 결과가 꽤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