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AI에게 어떤 상사일까
글 · 백상현 · Full-stack · AI Product Engineer
이런 상사와 일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일단 알아서 해봐.”
시키는 대로 해오면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라고 합니다. 어디가 다른지 물으면 “그것도 설명해야 해?”라고 합니다. 보고서는 계속 다시 가져오라면서 원하는 기준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같이 일하기 싫은 상사입니다.
그런데 AI에게 일을 시킬 때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요?
머릿속에는 원하는 결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다르면 AI가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느낍니다. 다시 시키고, 또 틀리면 화를 냅니다.
내가 설명하지 않은 조건까지 알아서 이해하길 바란 건 아닐까요?
“사람은 무능해질 때까지 승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무에서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했지만 관리자 역할에서는 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직접 일을 잘하는 능력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이끄는 능력까지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기존 조직에서 업무를 배분하고 결과를 검토하는 일은 주로 관리자의 역할이었습니다.
지금은 신입사원도 AI 에이전트에게 일을 맡깁니다. 업무를 나누고, 정보를 주고, 결과를 검토하고, 방향을 다시 잡습니다. 회사에서는 실무자지만 에이전트에게는 상사입니다.
우리는 승진하지 않고도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일을 잘 맡길 준비가 됐는지는 확인하지 않은 채로요.
그 차이는 보고를 받을 때도 드러납니다.
AI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짧게 해”, “쉽게 설명해”, “아니, 그 말이 아니라”를 반복합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보고 방식은 알려준 적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듣고 싶은지, 어떤 배경지식이 없는지, 무엇을 보고 판단하려는지. 내 머릿속에만 있는 기준을 알려주지 않은 채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렇게 일을 시키면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상사의 취향을 맞히는 데 시간을 쓰게 됩니다.
내가 판단하기 좋은 보고 방식부터 알려줘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할 것.
끝난 일과 남은 일을 나눌 것.
확인한 사실과 추정을 구분할 것.
내가 결정해야 할 것을 짚어줄 것.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보고를 보면서 무엇이 빠졌고 무엇이 불필요했는지 알려주면 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기준이 쌓여야 합니다. 매번 “다시 해”만 반복해서는 다음 보고도 달라지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형태로 보고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받은 보고는 나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물론 AI는 분명하게 지시해도 틀립니다. 확인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무엇을 맡기고 어떤 결과를 직접 확인할지 판단하는 일까지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인재는 혼자 일을 잘하는 데서 나아가 AI에게 일을 잘 맡기는 사람일 것 같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보고를 이해하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짚어줄 수 있는 사람.
AI의 성능만큼이나 내가 얼마나 유능한 상사인지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아닐까요.